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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냥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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탑매니저
2024.11.3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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4녀1남인 집에서 둘째딸
엄마는 초3때부터 늘 병원에
그 모든 뒷바라지를 하던 할머니
경찰이 직업이지만 집에서조차
경찰이였던 아버지
손녀들에게 막말 하던 할아버지...

공부하나 잘 하는걸로,
책을 끌어안고 있는걸로
욕 안먹고 인정 받으려
늘 노심초사하며 살아서

어느 순간
나는 그저 도구
엄마를 대신해서
집안을 챙기고
동생들을 돌보면서
내가 얼마나 괜찮은 도구인지,

결혼해서
두 아들 키우면서
돈벌고 살림 악착같이 하고
아들들 교육에 목숨 걸면서
내가 또 얼마나 잘 해내는지를 
늘 확인하면서
나는 잘 하고 있지
내가 얼마나 효율적인지
얼마나 좋은 결과를 만드는 사람인지
늘 노심초사하면서 확인하고
또 다짐하고 부지런 떨고...

50을 넘어가면서
처음으로 내가 도구 아닌 것으로
아무 것도 없다는 것을 알았다
조금의 빈둥거림도
조금의 나태도 여유도
인정하지 않고
밤 10시에 퇴근하고
선채로 밥  먹고
운동하러 나가서
2시간을 걷고..

과자 하나 먹는 것도 
늦잠을 자는 것도
허용하지 않았다

어느 순간
출근하러 씻다가도 울었다
퇴근했는데
집에 들어가기 싫어 맴돌았다
내가 완전히 텅비었다는 걸 
내가 도구 아니면 존재할 이유가 없었다

가족들에게 화가 났다
내가 그렇게 도구노릇을 해왔는데
당신들은 뭐 하나 만들어 놓은게 없다
도구는 녹슬고 삭아가고 있는데
니네는 뭐하냐..
가족들을 들볶다가 나를 들볶다가,

그렇게 저렇게 5년여 시간이 지난 요즘
나는 차츰 
어 이래도 괜찮네
이 정도면 됐어
쉬어도 돼
자도 돼
살 좀 쪄도 돼..

밥 하기 싫으면 외식하자
청소 좀 해줘
그냥 니가 알아서 해..

그래도 집은 굴러가더라
노심초사하면서 
발 동동 구르며
분단위로 쪼개쓰던 삶에서
뒹굴뒹굴 슬렁슬렁..
그저 시간이 지나도
으음 좀 기다려
할 여유가 생겼다

자존감
자존감 남한테 외쳤지만
나한테는 없다는 걸
이제 아주 조금씩 
그저 내 존재만으로
나는 나를 그저
두고 있다
지가 하는대로
뒹굴뒹굴, 흐느적 흐느적..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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